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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화학] 셀로판의 역사

이미지 출처: MILLION PACKAGING

셀로판의 역사

진정일 (고려대 명예교수, 전 IUPAC 회장)

✒️’월간 화학’은 과학자가 들려주는 화학 이야기로 외부 필진의 화학 칼럼을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01

최초의 방습 포장용 플라스틱, 셀로판 개발의 시작

   

이미지 출처: MILLION PACKAGING

첫 방습 포장용 플라스틱인 셀로판의 발명

모든 발명의 배경에는 ‘새로운 필요성을 간파’하는 ‘우수한 발명자’의 ‘노력’이 숨어있다. 셀로판 포장지의 발명과 개발 역사도 마찬가지다.

 

셀로판 포장지 발명의 시작이 된 사건

셀로판 개발은 1904년, 프랑스의 한 음식점에서 시작되었다. 스위스의 화학자인 브란덴베르거(Jacques Edwin Brandenberger) 박사를 당황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바로 옆 테이블에 있던 한 노신사가 잘못으로 포도주 병을 쓰러뜨려 포도주가 테이블 덮개를 붉게 물들였다. 이 광경을 목격한 브란덴베르거 박사는 그 날부터 어떻게 하면 테이블 덮개를 보호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브란덴베르거는 가장 흔하게 사용 중인 테이블 덮개의 재료들을 검토한 후 비스코스,레이온(인조견)으로 코팅하는 방법이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다면 비스코스 레이온은 무엇이고 셀로판과는 어떤 관계를 지닐까?

 

나무·풀·잎에서 얻는 셀룰로오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우리는 인류와 가장 가깝게 지낸 천연고분자 중 하나인 셀룰로오스에 대해 알아야 한다. 
나무, 풀과 잎의 성분인 셀룰로오스는 특수 목적을 위해 섬유와 종이가 되어 인류 생활과 문명을 크게 발전시켰다. 셀룰로오스 제품의 가공과 이용은 계속 많은 과학자와 기술자들의 관심과 과제가 되었는데 셀룰로오스는 녹아서 섞는 용융 가공이 불가능하고, 용융 전에 분해되었으며 용해시키는 용매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02

니트로셀룰로오스의 우연한 발견이 셀로판으로 이어지기까지

  

우연히 발견된 니트로셀룰로오스

1846년 스위스 바젤대의 화학교수, 쉔바인(Christian F. Schönbein, 독일인)은 우연한 실수로 화학사에서 중요한 발견을 한 사고를 경험했다. 부엌에서 산화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던 그는 황산질산 혼합물 플라스크를 실수로 쳐 넘어뜨렸고, 급하게 면직물로 된 부인의 앞치마로 바닥에 쏟아진 혼합물을 닦았다. 앞치마를 물로 헹군 후 뜨거운 난로 옆에 널어 말리려 하였으나, 앞치마가 마르기 전에 화염에 휩싸였다.
쉔바인은 이러한 현상에서 착안해 셀룰로오스(면)를 니트로화시켜 질산화 셀룰로오스(니트로셀룰로오스)를 만들었다. 이미 프랑스의 두 화학자 펠루즈(Theophile Pelouze)와 브라코노(Henri Braconnot)가 전에 셀룰로오스의 니트로화를 행했으나 쉔바인처럼 완전히 니트로화시키지는 못했었다. 셀룰로오스와 달리 니트로셀룰로오스는 유기 용매에 용해시켜 여러 형태로 가공이 가능했다. 쉔바인은 면화약을 재발명한 셈이었다.

 

니트로셀룰로오스 ‘콜로디온’과 콜로디온에서 뽑아낸 섬유 ‘샤르도네 실크’

같은 해인 1846년에 프랑스인 메나드(Louis Ménard)에 의한 또다른 발견이 있었다. 그는 니트로셀룰로오스가 에테르-알콜 혼합 용매에 녹는 것을 발견했는데, 이 용액을 콜로이드라 생각해 콜로디온(collodion)이라 불렀다. 
이후에 프랑스 화학자 파스퇴르(Louis Pasteur)의 조수로 일하던 샤르도네(Hilaire de Chardonnet)는 메나드의 콜로디온 용액에서 섬유를 뽑는 기술을 개발해 ‘샤르도네 실크’라고 자신의 이름을 붙였고 1889 파리 박람회에 전시되어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이 실크는 불에 잘 타 수명이 길지 못했다. 샤르도네 실크옷을 입은 멋쟁이 숙녀가 난로 옆에 서 있다가 옷에 불이 붙는 불운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후 니트로셀룰로오스 플라스틱으로 영화 필름도, 당구공 코팅도 만들었으나, 모두 화재와 폭발성 때문에 사용을 중지했다. 니트로셀룰로오스는 셀룰로오스보다 잘 탈 뿐만 아니라, 충격에도 발화하는 위험성을 지녀서 면화약으로도 사용되었다.

 

알칼리 셀룰로오스로 만든 ‘비스코스’

이후로도 셀룰로오스를 가공하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은 계속되었다. 1892년에 영국의 크로스(Charles F. Cross), 비번(Edward J. Bevan)과 비들(Clayton Beadle)은 셀룰로오스로 레이온(rayon)섬유를 만드는 법을 발명했다. 
이들은 나무 펄프 중 셀룰로오스를 수산화나트륨(가성소다) 용액으로 처리해, 알칼리 셀룰로오스를 만들었다. 이를 다시 이황화탄소(CS2)와 반응시켜 점성도가 큰 오렌지색 크산토겐화 셀룰로오스 용액인 비스코스(viscose)를 얻었는데, 이 용액을 방적돌기(spinneret)를 통해 방사한 후 황산 욕조 속에서 침전시켜 비스코스 레이온 섬유를 얻었다. 레이온 섬유는 실크같은 광택을 보여주기 때문에 ‘인조견사’라 불렀다. 

 

비스코스에서 얻게 된 최초의 ‘셀로판’

프랑스의 브란덴베르거는 이 비스코스 용액을 면 식탁보에 뿌려 비스코스가 코팅된 천을 얻으려 노력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그는 비스코스로부터 얇은 필름을 얻었으며, 이 필름을 ‘셀로판’(투명한 셀룰로오스라는 의미*)이라 이름 붙였다. 세계 제1차대전 직전인 1913년에 브란덴베르거는 셀로판 필름을 제조, 판매하기 시작했다. 


* 셀로판(cellophane): 셀룰로오스의 'cello'와 투명하다는 뜻의 프랑스어 ‘diaphane’의 'phane'에서 따와 명명

 

 

03

방습성과 방수성 갖춘 포장지로 태어나다

   

이미지 출처: www.flickr.com

듀퐁사의 첫 방습 셀로판 필름 생산과 담배사 경쟁으로 유명해진 셀로판

그 후 미국의 듀퐁사가 내습성 셀로판 필름을 1926년에 미국 시장에 시판하면서 셀로판은 다시 세상을 흔들었다. 1926년 6월, 듀퐁사에서는 첫 500파운드의 방습 셀로판 필름을 생산하였다. 그런데 셀로판이 유명해진 배경에는 뜻밖에도 담배가 한몫했다.
1930년대에 미국의 담배 회사들 간에는 엄청난 경쟁이 일고 있었다. 특히 카멜(Camel)과 럭키 스트라이크(Lucky Strike)간의 경쟁이 심했다. 럭키 스트라이크는 담배를 볶았기 때문에 습도에 잘 견디며 담배의 신선한 맛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카멜은 이에 대응 전략을 찾기에 고심했다. 그런 와중에 셀로판 판매 책임자였던 듀퐁의 한 부사장의 방문으로 문제의 해결점을 찾았다. 카멜의 제조사 레이놀즈(Reynolds)의 책임자 롱(R. D. Long)은 낯선 방문자가 시가 박스에서 바삭바삭하고 빛나며 완전히 투명한 포장지 속에서 시가를 꺼내 입에 무는 모습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 더구나 이 사람은 그 시가를 사무실 바닥에서 아무런 손상도 없이 구둣발로 몇 번 눌러 굴려 보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몇 달 후 롱은 듀퐁을 방문해 그렇게 장시간 포장해 두어도 시가의 수분과 맛이 그대로 유지됨을 재확인했다.

‘옳지, 우리 카멜 담뱃갑을 이 필름(셀로판!)으로 포장하면 되겠구나!’

결국 1931년부터 카멜은 ‘처음처럼 신선하게’라는 맞대응 선전구로 럭키 스트라이크의 ‘볶은 담배의 지속적 맛’과 싸우게 되었다. 물론 두 회사뿐만 아니라 다른 담배 회사들도 모두 담뱃갑을 셀로판 필름으로 포장해 담배 마름을 방지하면서도 수분이 들어가지 않게 하였다. 

 

표면 코팅방법으로 방습 방수에 뛰어난 셀로판 포장지 개발

 

‘종이같이 얇지만 찢기 힘들며, 종이 같지만 박엽지와 달라 유리처럼 맑고 투명합니다. 
유리같이 깨지지 않으며, 넓게 사용할 수 있고 방수성을 지닌 제품입니다.’

 

듀퐁사가 셀로판 판매와 소비를 추진하기 위해 사용한 선전 문구다.
그러나, 듀퐁의 셀로판은 처음부터 방습과 방수성에서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캔디, 초콜릿, 과자, 케이크 등 식품의 경우는 셀로판으로 포장했을 때 매력적인 투명한 모습은 우수했으나 수분을 잃는 단점이 발견되었다. 
이 문제의 해결 숙제는 GM사를 퇴사하고 듀퐁에 입사한 차치(William Hale Charch) 박사에게 맡겨졌다. 그는 대학원을 마친 지 일 년 반밖에 되지 않는 27세의 젊은 화학자였다. 
그는 기존의 셀로판 성분을 화학적으로 변경하기보다는 표면 코팅방법을 택했다. 가장 먼저 그는 니트로셀룰로오스(nitrocellulose) 코팅에 의존했으나 방수성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많은 노력 끝에 그는 니트로셀룰로오스, 방수 왁스, 가소제와 상용성 증진제 등 4성분 사용법으로 방습, 방수라는 목적을 이루고 동시에 우수한 물리적 성질을 유지할 수 있었다. 
개선된 셀로판 필름 포장 덕분으로 호밀, 계피, 크랜베리 케이크 등 특수 빵들의 판매량이 10배까지 껑충 뛰었다. 이는 차치 박사의 우수성과 업적이 빛나는 플라스틱 역사의 일부다.

 

많은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다양한 용도로 쓰일 수 있게 된 포장용 셀로판

순수한 셀로판 자체는 포장용으로 적합하지 못했으나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내습성과 열을 가리고 막는 열차폐성이 개선되면서, 화장품, 식품, 의약품 등 다양한 용도에 인기를 끌었다. 


지금은 새로운 플라스틱 포장재의 출현으로 셀로판 소비가 많이 감소했으나, 친환경 생분해성 재료라는 장점 때문에 셀로판의 소비가 다시 증가하고 있다. 삼투막으로도 사용되며, 스카치 테이프를 비롯해 초·중등학교 공작시간에 많이 사용하는 형형색색의 셀로판지. 셀로판은 지금도 우리 곁에 있다.

 


  

종합 케미칼 & 에너지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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