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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화학] 연금술과 근대 화학

연금술과 근대화학

 

과학쿠키 (과학 커뮤니케이터, ‘과학쿠키’ 유튜브 채널 운영자)

✒️’월간 화학’은 과학자가 들려주는 화학 이야기로 외부 필진의 화학 칼럼을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연금술’이라고 부르는 학문은 근대화학이 꽃피우기 전까지 원소를 다루는 여러 실험 방법으로 전해지며, 원소에 관한 튼튼한 기초를 마련해주는 학문이 되어 주었습니다. 오늘은 ‘연금술’이 어떻게 근대 화학의 발전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는가에 관해 간략히 알아보고자 합니다.

 

 

01

연금술, 그 시작

   

연금술의 발생지, 이집트

보다 넓은 의미로 이야기하면, ‘연금술’은 흔하게 구할 수 있는 값싼 금속들을 황금으로 변환시키는 것 뿐만 아니라, 병을 치유하는 주술이 담긴 가루를 만들거나 시체가 썩지 않도록 하는 약을 제조하는 등의 여러 신비스러운 비술을 뜻합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연금술이 가장 먼저 시작되었다고 알려지는 곳은 고대 이집트로서, 처음에는 파라오와 같은 권력자의 시체가 부패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연구인 ‘방부’ 기술의 개발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문명 발상의 국가로서, 당시 수학과 기하학, 천문학을 크게 발전시켰던 이집트인들은 ‘연금술’을 연구하는 방법에 그들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가미했습니다. 자연에서 흔히 나타나는 일곱 가지 금속들을, 행성에 대응시켜 설명했던 것입니다. 금은 태양으로, 은은 달로, 수은은 수성으로, 구리와 철, 주석, 납 등의 금속들은 각각 금성과 화성, 목성, 토성으로 대응시켜 연금술에 대한 지식을 독특한 방식으로 기록해 남겨 두었습니다. 예를 들면 ‘구리와 주석을 섞어 청동을 만든다’ 와 같은 내용을 ‘금성과 목성을 결합하여 청동을 만든다. ’와 같은 방식으로 기록했습니다.

 

자연 철학의 태동으로 물질의 근원을 탐구하다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이 등장한 건 시간이 조금 더 지난 뒤였습니다. 당시에는 신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자연을 다스리고 있다고 생각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때에,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자연을 설명하고자 했던 몇몇 시도가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생각하는 사람들’의 기여로, 서방 어느 작은 폴리스 국가로부터 소위 자연 철학이라는 학문이 깨어났습니다. 
‘모든 만물은 하나의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해 눈을 뜬 인간의 이성은 곧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에 관한 합리적인 이해를 추구하게 됩니다. 
*탈레스*가 최초로 주장한, ‘만물은 물로 이루어졌다’는 가설을 시작으로, 물질의 근원은 과 과 공기의 네 가지로 좁혀지는 듯 했습니다. 물론 현대 원자론에 큰 영향을 준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 견해도 있었지만, 당시 4원소를 주장하던 학자들의 권위에 가려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4원소설의 믿음으로 시작된 연금술

여기서 당대 물질에 관한 설명의 주류였던 4원소설을 기존과는 다른 시각으로 보다 유용하게 활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4원소로 대표되는 물질들을 교묘하게 조합하면 모든 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들의 믿음이 ‘연금술’이라는 이름의 독자적인 하나의 연구 영역으로 자리잡게 된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4원소설과 같은 학문의 심도 깊은 이해는 삶의 현장에도 적용되어, 값싼 금속인 납을 어떻게 하면 아름답고 희귀한 광물인 금으로 바꿀 수 있는가에 관한 문제를 고민하는 방법론으로 뻗어 나갔습니다. 연금술사들은 철학자들의 4원소설을 자신들의 연구를 위한 수단으로 받아들이게 되는데, 네 가지 원소의 배합을 통해 모든 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새로운 발상을 떠올리게 된 것입니다. 이 때, 불과 금속을 다루기 위한 다양한 실험도구들이 개발되었고, 기술들이 점차 숙련되었습니다. 

 

 

02

원소 변화를 이해하는 연구가 된 연금술

  

로마 황제의 연금술 금지령을 피해 아랍권에서 명맥을 이어가다

잘 성장할 것 같던 연금술은 서방 국가에서 잠시 자취를 감추게 되는데, 서기 300년 경, 로마를 통치하고 있던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로마 전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연금술과 그로부터 행해지는 모든 주술적인 행위를 ‘악마 숭배’로 간주해, 제국 전체에 연금술에 대한 모든 연구 활동을 금지시켜버립니다. 
이윽고 340년,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로 받아들여지게 되면서 서양은 바야흐로 자연철학의 암흑기로 일컬어지는 시대인 ‘중세’로 진입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핍박 속에서도 연금술의 뿌리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연금술을 연구하던 학자들은 연금술에 대한 금지령을 피해 하나 둘 아랍 지방으로 이동하였고, 이미 연금술을 독자적으로 연구하고 있던 중동의 연금술사들과 만나게 되면서 서양 연금술 또한 사라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유지, 발전 될 수 있었습니다.

 

황-수은 이론을 주장한 연금술사 자비르 이븐 하이얀 

역사 상 가장 화학의 발달에 큰 영향을 준 연금술사를 꼽자면, 항상 거론되는 인물이 있습니다. 8세기 아랍의 연금술사, ‘자비르 이븐 하이얀’입니다. 그는 원소의 개념을 사용했던 연금술사로도 유명한데, 불타는 돌의 원소인 ‘황’과 흐르는 금속의 원소인 ‘수은’을 이용하면 여러 다른 종류의 금속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이른바 황-수은 이론으로 일컬어지는 그의 견해는 후대의 연금술사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초기 근대 화학의 연소 이론이었던 ‘플로지스톤’ 이론*에도 큰 영감을 부여하게 됩니다. 
이후 아랍 세력이 약해지기 시작한 12세기 즈음부터, 연금술은 중세 학문의 철옹성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서양 사회로 넘어오게 되면서, 몇몇 신비주의 철학을 따르는 사람들에 의해 비밀리에 연구되었습니다.
이 시점으로부터 중세 서양은 쇠퇴의 길을 걷습니다. 수차례에 걸친 종교 전쟁의 패망과 교황에서 비롯된 종교의 몰락 등 복합적인 요소에 의해, 중세 암흑기는 서서히 인간 이성의 광명에 의해 막을 내리고, 자연스럽게 연금술도 하나의 학문으로서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합니다. 


*플로지스톤 이론: 18세기 초, 여러가지 연소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 개념으로 가연성 있는 물질 내에 포함되어 있어 연소 시 플로지스톤이 빠져나가고 공기가 채워져 들어가는 것이라고 믿었음 

 

물질의 화학 변화를 분류한 파라셀수스

16세기, *파라셀수스*라는 예명으로 활동했던 의학자이자 연금술사인 필리푸스 폰 호엔하임은 연금술이 단순히 납을 금으로 변화시키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치유하고, 원소를 활용하는 등 인간 활동에 본질적으로 필요한 기술이라는 주장을 펼치며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무언가를 태워 재로 변하게 하는 연소, 딱딱한 물질이 곧바로 기체로 변화되는 승화, 물질이 액체 속에 녹아내리는 용해, 시간의 경과에 따라 물질의 상태와 냄새가 변하는 부패, 증발시킨 액체로부터 서로 다른 액체를 분리하는 기술인 증류, 액체가 딱딱한 고체로 변하는 현상인 응고, 물질의 색을 변화시키는 염색 등과 같은 다양한 과정을 연금술의 연구를 통해 분류하고 발달시켰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연금술은 모든 종류의 물리적, 화학적 변화를 의미했습니다.

 

 

03

물질 연구의 이해를 도운 연금술

   

파라셀수스가 고안한 3원질-4원소 이론으로 물질 반응 연구

파라셀수스는 앞선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설과 자비르 이븐 하이얀의 황-수은 이론을 모두 받아들여 이른바 3원질-4원소 이론이라는 새로운 이론을 독창적으로 만들어냈습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모든 물질은 세 가지의 원질인 과 수은, 그리고 그들의 결합으로 만들어지는 ‘염’이라는 물질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네 가지 원소와 합치하여, 어느 특정한 비율로 섞이는가에 따라 만물이 만들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3원질-4원소 이론에 따라, 나무가 불에 타는 경우를 예로 들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무를 불타게 하는 것은 황, 불타는 나무의 불꽃을 만들어 주는 것은 수은이며, 불타고 남은 물질은 염이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황-수은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염의 과정이, 모든 물질의 반응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설명하는 3원질-4원소 이론은 초기 화학자들이 불과 물질을 연구하는 과정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연금술 연구로 이어진 의화학의 태동

또한 파라셀수스는 연금술 연구로부터 만든 지식을 활용해 환자의 병을 치료하고자 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사람을 구하는 화학 분야인 ‘의화학’의 시초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파라셀수스는 히포크라테스로부터 유지되어 오던 4체액설의 믿음을 버리고, 연금술의 방법을 통해 만들어낸 적절한 약을 통해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믿었죠. 
그런데 이 때 활용했던 안티모니, 수은 등은 오늘날 매우 조심히 다뤄야 하는 독성 금속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파라셀수스의 이와 같은 생각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터무니없고 무모해 보이지만, 약학이라는 학문의 태동을 가져왔다는 맥락에서 큰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발견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기계론적 세계관으로 재조명된 원자론

시대는 계속해서 흐르게 되고,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데카르트, 그리고 뉴턴으로부터 이룩된 과학적 방법의 확립과 과학혁명의 영향에 의해, 수많은 자연철학자들은 세상이 우주라는 거대한 기계 속에서 완벽한 조화로 설계된 하나의 원리에 의해 작동한다는 사고관인 기계론적 세계관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우주가 단 하나의 진리라는 체계 속에서 거대한 기계처럼 운행된다고 생각한다는 이 사고관 때문이었을까요? 세계를 구성하는 물질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한 4원소로도, 파라셀수스가 이야기한 3원질-4원소 이론도 아닌,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인 데모크리토스가 설파했던 아주 작은 알갱이과 빈 공간이 모든 물질의 근원이라는, 이른바 ‘원자론’이 다시 과학자들로부터 조명되었습니다. 
연금술로부터 출발한 세상의 근원을 찾는 과학자들의 이야기는 가장 작은 물질을 찾아 지적 탐구를 지속한 과학자들의 이야기로,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종합 케미칼 & 에너지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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