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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miLOG

[월간 화학] 페트(PET)로 알아보는 폴리에스터 이야기

페트(PET)로 알아보는 폴리에스터 이야기

진정일 (고려대 명예교수, 전 IUPAC 회장)

✒️’월간 화학’은 과학자가 들려주는 화학 이야기로 외부 필진의 화학 칼럼을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폴리에스터는 PET병으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지만 PET섬유가 더 먼저 우리 생활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또한 PET필름은 코닥 카메라, 위성에 쓰이기도 한다. 화학의 세계에서는 이들이 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한다. 

화학적 결합의 형태에 따라 다양한 소재가 될 수 있는 것이 화학의 묘미다. 오늘은 PET가 실생활에 응용되기까지 화학자들의 노고가 담긴 지난날들의 이야기를 알아보고자 한다. 

 

 

01

폴리에스터란?

   

폴리에스터(Polyester)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정의할 수 있으나 화학적으로 가장 옳은 표현은 ‘주 사슬을 구성하는 매 반복 단위에 에스터(-COO-) 작용기를 지니고 있는 고분자들’이다. 폴리에스터의 다양한 종류 중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것은 페트(PET, Poly(Ethylene Terephthalate))다. 공식 명칭은 폴리테레프탈산 에틸렌 혹은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다. 

PET는 에틸렌 글리콜(Ethylene Glycol, HO(CH2)2OH)이라는 디올(Diol)*과 테레프탈산(Terephthalic acid, C8H6O4)이라는 디카르복시산((Dicarboxylic acid)**으로 제조한다. 디올과 디카르복시산을 이용해 다양한 폴리에스터 합성이 가능하며, 실제로도 여러 종류의 폴리에스터들이 시판되고 있다. 

흔히 페트병이라고 하는 투명 플라스틱병은 폴리에스터 플라스틱을 가공, 제조한 열가소성 고분자 제품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PET 섬유가 PET 플라스틱보다 훨씬 먼저 개발되어 시판되었다. 천연 섬유인 면, 비단, 양모 등에 비해 다루기가 쉽고 장기간 사용이 가능해 나일론과 함께 인공 섬유 시장을 점령해온 중요한 섬유다. 단독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면, 아크릴 섬유 등과 혼합해 사용하기도 해 이용범위가 매우 넓다. 특히 ‘물 실크’라 부르는 극세사 폴리에스터 섬유 제품은 천연 비단을 대용하는 섬유로 사랑받고 있다. 이러한 인공 섬유가 발명되기까지는 여러 화학자의 역할이 컸다.

*디올(Diol) : -OH기가 두 개인 알코올 
**디카르복시산(Dicarboxylic acid) : 카르복시기를 두 개 갖는 유기화합물 

 

 

02

폴리에스터에서 최초로 확인한 인공섬유 가능성

  

이미지 출처: 듀폰사 공식 홈페이지, 구글 아트 앤 컬쳐

나일론 발명자로 유명한 듀폰사의 캐러더스(Wallace H. Carothers)는 나일론을 발명하기 전 폴리에스터 합성 연구에 열중했었다. 고분자에 푹 빠져있던 캐러더스는 폴리에스터 제품을 개발해야겠다는 목적보다 1920년대 초, 독일의 슈타우딩거(Hermann Staudinger, 1953 노벨 화학상 수상)가 제안한 고분자설을 증명해 보이고 싶은 욕망이 컸다. 당시만 해도 고무·섬유·단백질 등 고분자 화합물의 화학적 특성이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을 때였다. 슈타우딩거 박사는 ‘천연고무나 자연섬유(셀룰로오스)는 공유결합을 통해 가늘고 긴 선 모양의 고분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저분자 물질 합성을 통해 고분자의 인조고무나 합성섬유를 만들 수 있다’는 고분자 가설을 주장했고, 여러 해 동안 학계의 찬반 의견이 팽팽했다. 

캐러더스는 축합* 반응을 통해서 분자량이 큰 선형 고분자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폴리에스터 합성에 몰두하였다. 이 연구를 위해 MIT에서 유기화학 박사 학위를 받은 쥴리안 힐(Julian Hill)을 투입했다. 

캐러더스와 힐은 3-16 폴리에스터라고 불리던 고분자를 1,3–트리메티렌디올과 헥사메틸렌 디카르복시산을 출발 물질로 사용해 분자량 12,000이 넘게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처음에 이 고분자 덩이는 별 쓸모가 없어 보였다. 녹는 점도 높지 않았고 유기 용매에 쉽게 녹아 들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힐이 이 고분자물을 실온에서 잡아 늘여 실(섬유)을 만들었는데, 매우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인장강도**나 탄성이 명주실(silk) 못지않게 매우 컸고, 물에 적셨을 때도 강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X-선 회절 분석***도 꼭 명주실과 같은 패턴을 보여주었다. 

새로운 섬유는 완벽한 합성 섬유로 저분자량의 출발물로부터 합성된 고분자 물이었다. 하지만 폴리에스터 3-16은 녹는 점이 너무 낮아 끓는 물에 견디지 못했으며, 드라이클리닝 용매와 알코올에도 용해되어 상품화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인공 섬유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만은 분명했다.

*축합: 두 분자가 반응하여 둘 중 작은 분자가 빠지고 더 큰 분자로 중합되는 것
**인장강도: 물체가 잡아당기는 힘에 파괴되지 않고 견딜 수 있는 최대한의 세기
***X-선 회절 분석: 일정 간격으로 배열된 고체에 X-선을 쪼아 나타나는 패턴 모양을  분석하는 것으로 물질을 파괴하지 않고도 결정 구조의 측정이 가능하다

 

 

03

PET섬유의 개발

   

이미지 출처: Bradford Timeline(flickr), Vintage North Blog

캐러더스와 힐의 폴리에스터 3-16이 흥분과 실망을 함께 주면서 듀폰의 폴리에스터 관련 연구가 지지부진한 동안 영국의 CPA 사(Calico Printers Association, 캘리코인쇄조합)에서는 에틸렌 글리콜과 테레프탈산으로부터 새로운 폴리에스터 개발을 위한 연구 프로그램을 1940년에 시작했다. 이 연구 프로그램은 윈필드(John Rex Whinfield)와 그의 조수 딕슨(James Tennant Dickson)이 시작했으며, 1941년에 첫 특허 신청을 했을 정도로 연구 진척이 매우 빨랐다. 

이 연구는 영국 정부 산하의 화학연구소에서 스케일 업*은 물론, 연속 필라멘트의 용융 방사** 및 연신***에 성공하여 고강도 섬유를 얻었다. 긴 사슬 지방족 디카르복시산 대신에, 벤젠고리를 지닌 방향족 디카르복시산인 테레프탈산을 사용한 것이 성공의 비결이었다.

곧 영국의 ICI사가 이 놀라운 발명과 개발 기술을 1943년에 CPA 사로부터 인수하였다. 당시 ICI사와 미국 듀폰사 사이에는 연구 결과를 공유해야 한다는 협정을 맺고 있던 터라 ICI사는 이 정보와 시료를 듀폰사에 제공했다. 듀폰사는 중합반응의 촉매를 개발해 제조 특허를 미국에서 얻었다. 그 사이 ICI사는 CPA 사로부터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의 권리를 획득했다(1947). 이로부터 ICI사의 테릴렌(Terylene)과 듀폰사의 대크론(Dacron)이 세계 시장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PET 섬유는 연신 후의 강도가 나일론 다음이며, 물에 젖어도 강도에 변함이 없다. 의복 특히 외투나 바지를 만들었을 때 구김 회복도가 우수하며, 물에 적시면 그 회복도가 더욱 좋아진다. 흡습성이 낮아 건조가 쉬워 셔츠 소재로 환영받는다. 특히 양모, 면 등과 혼방하여 순수 폴리에스터의 약점을 보완한다. PET 섬유는 침대 시트, 담요, 카펫 등뿐만 아니라 자동차 타이어의 보강제, 컨베이어 벨트 및 안전벨트의 천, 베게 등의 쿠션, 절연 재료 등으로 넓게 사용되고 있다. 

*스케일 업: 실험실에서 성공한 프로세스를 공업화하기 위해 규모를 확대하는 것
**용융 방사: 고분자를 융점 이상으로 가열하여 용융하고 노즐에 압출, 냉각시켜 가늘고 긴 모양의 섬유를 얻는 방식
***연신: 방사된 실이 최종 섬유로 활용하기 적합하도록 강도를 부여하기 위해 길게 늘이는 공정

 

 

04

PET 필름의 출시

   

이미지 출처: sorbentsystems.com

한편 미국의 이스트만 코닥(Eastman Kodak)사는 1955년에 마일라(Mylar)라는 상품명의 PET 필름을 사진 필름에 사용했다. NASA는 마일라 PET 필름을 사용한 풍선 모양의 위성을 일만 미터 이상의 궤도에 진입시켜 통신 위성실험을 행하기도 했다. 1964년 NASA는 4.5 마이크로미터 두께의 알루미늄 두 박막 사이에 2마이크로미터 마일라 PET필름을 샌드위치 꼴로 만들어 지름이 40미터나 되는 에코Ⅱ 위성을 출시했다. 

이 연구와 실험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축 배향(biaxially orientated)* 시킨 PET 필름의 높은 강도와 강성 때문이었다. 또 이축 배향 PET 필름(BOPET 필름)은 비록 결정성을 지니지만 그 결정들의 크기가 가시광선보다 작아 우수한 투명성을 지닌다. 

이축 배향 PET 필름은 알루미늄, 금 및 기타 금속류를 증착**시켜 금속의 얇은 막을 입힐 수 있으며, 두 물질 간의 접착이 매우 우수하여 금속막이 벗겨지지 않는다. 이렇게 준비된 필름은 기체 투과율이 매우 낮으며(식품 포장에 매우 중요하다), 빛의 99%를 방사하며 적외선도 많이 반사된다. 식품 포장에 많이 사용되는 금속 증착 PET 필름들은 폴리에틸렌 적층 구조를 만들어 밀봉성을 갖게 하며, 구멍이 잘 나지 않게 한다. 

이축 배향 PET 폴리에스터 필름은 주로 1) 신축성 포장과 식품 접촉성 용도 2) 종이 제품 피복 3) 절연 재료 4) 태양 에너지 및 항공용 5) 과학 분야 6) 전자 기술 및 음향 기술 분야 7) 인쇄 분야 등 다양한 곳에 쓰인다. 

*이축배향: 주로 포장재를 만들 때, 필름이나 시트 상태에서 열을 가하고 가로와 세로 방향으로 잡아당겨 늘리는 작업
**증착: 진공 상태에서 금속이나 화합물을 가열ㆍ증발시켜 그 증기를 물체 표면에 얇은 막으로 입히는 일

 

 

05

PET 플라스틱 병의 탄생

   

PET 플라스틱은 PET 섬유에 비해 늦게 개발되었다. 플라스틱 음료수병은 현재 우리 주위에 매우 흔하며, 그들은 대부분 PET 폴리에스터 병이다. 그 정도로 PET병의 유용성이 인정받고 있다. 무거우며 깨지기 쉬운 유리병 대신 가볍고 깨지지 않는 PET병이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음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첫 PET병은 1973년에 듀폰사의 나다니엘 와이어쓰(Nathaniel C. Wyeth, 1911~1990)가 제조 특허를 얻어 탄생하게 되었다. PET로 여러 모양의 용기 제조가 용이하기 때문에 음식(냉동식품) 저장통, 화장품 용기, 화학약품 저장 용기, 세탁제 용기나 포장재로도 사용되고 있다.

특히 재생 이용이 용이해 PET에 관한 관심은 더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폐기된 PET병으로 의류뿐만 아니라 카펫용 섬유를 뽑는 기술이 개발되었으며, 겨울 방한복과 침낭의 화섬(화학섬유)면 제조에 재사용되고 있다. 범퍼 같은 자동차용품 생산에도 쓰이고 있다. 

PE, PP, PS 등 여러 종류의 플라스틱에 비해 우수한 물성과 낮은 독성, 재가공·재사용의 용이성 등 때문에 PET 제품들이 우리들의 일상에 깊이 파고들어와 있다. 

끝맺는 말
최근에는 친환경적인 플라스틱 사용과 관련해 몇 가지 고무적인 발전이 눈에 뜨인다. 첫째는 PET를 분해하는 박테리아와 효소다. 일본 과학자들과 영국 포츠머스(Portsmouth) 대학연구팀이 PET 분해 효소(PETase)의 변종을 발견한 덕분에 더 빨리 PET를 분해할 능력을 지닌 박테리아와 효소의 출현이 가능해졌다. 둘째는 PET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고분자로 PEF(polyethylene furanoate)가 부상하고 있다. 천연물 탄수화물로부터 만드는 더 친환경적인 2,5-푸란디카르복시산을 사용한다.

무엇보다도 당장은 소비를 줄이고, 재활용, 재원료화를 추구하여야 한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PET 제품들은 당분간 우리들과 함께할 것은 분명하다.

 


  

종합 케미칼 & 에너지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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