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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miLOG

[월간 화학]최초의 합성 플라스틱, 베이클라이트 이야기

이미지 출처: NewYork Times

최초의 합성 플라스틱, 베이클라이트 이야기

진정일 (고려대 명예교수, 전 IUPAC 회장)

✒️’월간 화학’은 과학자가 들려주는 화학 이야기로 외부 필진의 화학 칼럼을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어린 시절 매일 사용한 전구 소켓은 모두 새카맣고 윤기가 도는 플라스틱 제품이었다. 이는 전기절연성이 우수하고 열에 잘 견디는 성질 때문인데, 지금도 가끔 보이는 까만 전화기나 라디오, 부엌 도구, 장난감에도 이 플라스틱이 쓰였다. 바로 ‘베이클라이트(Bakelite)’라고 불리는 인류 최초의 플라스틱이다. 

그 다양한 용도에 비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베이클라이트는 베이클라이트를 발명한 벨기에 화학자 베이클랜드(Leo Baekeland, 1863~1944)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발명자의 이름을 제품명에 붙인 드문 경우다. 

 

 

01

베이클랜드 박사, 사진 인화지 개발로 백만장자가 되다

   

이미지 출처: lohud.com / Lemelson Center for the Study of Invention and Innovation

“아, 베이클랜드 박사가 또 지나가네.”

먼지를 날리며 자동차를 타고 가는 낯선 젊은 신사의 모습에 뉴욕시 근교 용커스 주민들은 의문과 호기심의 눈길을 보냈다.

‘비록 화학박사라고 하지만, 36살밖에 안 된 젊은이가, 더구나 이민자가 어떻게 저렇게 큰 저택에 살고 있지?’

저택 앞을 지나는 주민들은 의아해했다. 

게다가 베이클랜드는 용커스의 스넉 록(Snug Rock) 저택의 주인이 된 후 마구간을 사설 실험실로 꾸며 놓았다. GE사가 뉴욕주 스키넥터디(Schenectady)에 미국 첫 기업 연구소를 차린 해가 1900년이었으니, 베이클랜드가 비슷한 시기에 사설 연구실을 차린 일은 역사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벨기에 출신 화학자 베이클랜드는 1889년, 26세의 나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벨기에의 명문 겐트대학교(Ghent University)에서 21살 나이에 우등생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을 정도로 뛰어난 과학자였다. 그는 강의실이나 연구실에서 얻은 지식을 실생활에 적용하는 실용주의자였는데, 그가 고가 저택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이러한 그의 실용주의적 태도 때문이었다. 

그는 미국으로 이민을 온지 10년 만에 사진 인화지, 벨록스(Velox)를 개발했는데, 당시 유명 사진 기술자이자 코닥 카메라를 고안한 조지 이스트먼(George Eastman)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옳지. 내 기술을 $50,000로 요구하고, 이 반값에라도 팔아야겠다.’ 

그러나 베이클랜드는 이스트먼으로부터 믿지 못 할 말을 들었다.

“$1,000,000의 4분의 3 정도면 어떤가?” 

베이클랜드는 이 믿지 못할 제안에 흥분했다. 아들의 이름을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이라고 지은 자신의 판단에, 놀람과 기쁨을 되새기며 집으로 돌아왔다.

 

 

02

합성 셸락을 대체할 물질 연구에 몰두하다

  

이미지 출처: Mainland Chroma

벨록스 감광지 발명으로 부와 명예를 함께 얻은 베이클랜드는 다양한 발명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합성 셸락(shellac)’이 가장 필요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셸락은 암컷 랙깍지 진디벌레가 나무껍질에 들러붙어 다니며 수액을 빨아먹고 터널 모양으로 남기는 배설물을 모아 정제해 만드는 천연수지로, 나뭇가루 등과 섞어 열과 압력을 가하면 쉽게 광택이 나는 성형품으로 가공할 수 있다. 그래서 비닐이 널리 쓰이기 전까지는 축음기판, 액자, 상자, 장식품 등에 다양하게 사용됐다. 이 소재는 방수성도 뛰어나 전선의 고정 절연체나, 현재에도 프렌치 광택 마감이라고 부르는 나무(가구, 현악기 및 피아노 등)의 고급 코팅제로도 널리 이용되고 있었다. 

베이클랜드는 셸락 대체물을 발명하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는 첫 번째로 셸락의 높은 생산비용 때문이었다. 셸락 1kg을 생산하려면 자그마치 50,000~300,000개체의 랙깍지 진디벌레가 필요한데다가, 이 벌레는 인도와 동남아 지역에만 서식하고 있었다. 두 번째로 당시 전기사업이 급속하게 팽창하면서 절연체로 쓰이던 셸락의 수요도 덩달아 급격히 늘어났다. 세 번째로 당구가 점점 대중화되는 반면 코끼리 개체 수는 급감해 당구공이 희귀품이 되면서 상아 대체물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1902년에 이미 38살의 젊은 백만장자 화학자이자 사업가였던 베이클랜드는 셸락 대체물 합성에 뛰어들게 되었다.

 

 

03

세계 최초의 합성 플라스틱 ‘베이클라이트’ 개발에 성공

   

이미지 출처: NewYork Times

베이클랜드는 독일의 화학자였던 바이어(Adolf von Baeyer, 1905년도 노벨화학상 수상)와 클리버그(Werner Kleeberg)가 했던 기존의 연구를 면밀히 검토했다. 그리고 오랜 연구와 실험 끝에 페놀과 포름알데히드의 반응조건(온도와 압력)을 조절하면 안정적인 대체 물질로 합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베이클라이트’라고 부르는 인류의 첫 합성 플라스틱이다.

장장 5년간을 실험실에서 보낸 베이클랜드는 1907년 6월 20일 발명의 기쁨을 다음과 같이 적어 내려갔다. 

‘누렇고 단단한 고형물…. 매우 유망해 보이는 이 물질이 얼마나 유용하게 쓰일까! 특히 경질 고무의 대체물이 되겠지’

‘요즈음 얻은 매우 성공적인 연구 결과는 플라스틱과 바니쉬* 등 광범위한 응용성을 지닌 몇 가지 새로운 제품에 쓰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같은 해 7월 14일 베이클랜드는 ‘페놀과 포름알데히드의 불용성 축합물 합성법의 유용한 개선’ 특허(흔히 ‘열과 압력’ 특허라 부른다)를 취득했다.

베이클랜드는 액체(베이클라이트 수지)를 압력과 가열을 통해 투명한 호박색 고체로 경화하고, 정확한 용기 모양으로 복제했다. 가공 후에는 타거나 녹거나 혹은 어느 용매에도 용해되지 않는 첫 열경화성 합성 플라스틱*이 완성됐다. 재가공이 가능한 열가소성 플라스틱*과는 대조되는 부류였다. 또한 천연물인 셀룰로스로 만드는 기존의 수지인 셀룰로이드와 달리 완전한 합성물이었다.

*바니쉬(varnish): 천연수지나 합성수지를 녹여 광택이 있는 투명한 피막을 형성하는 도료
*열경화성 플라스틱: 열을 가하면 녹지 않고 타서 가루가 되거나 기체를 발생시킴
*열가소성 플라스틱: 열을 가하면 녹고, 냉각하면 고체상태로 돌아가 재가공이 가능

 

 

04

실용화에 성공하며 기적의 소재가 되다

   

이미지 출처: Lemelson Center for the Study of Invention and Innovation

1909년 2월 5일 베이클랜드는 뉴욕의 화학자 클럽(Chemist’s Club)에서 자신의 새로운 발명품 베이클라이트를 세상에 소개했고 ‘뉴욕 썬(New York Sun)’지가 베이클랜드의 발명을 헤드라인으로 선전했다.

베이클라이트는 우수한 물리적 안정성 외에도 어떤 천연물보다도 전기절연성이 뛰어났고, 고무보다 우수한 내열성을 지녔으며, 깨지거나 금이 가지 않고, 햇빛, 습기, 염수나 공기에도 색이 변하거나 변형되지 않았다. 염산과 알코올 등 화학약품에도 견뎌 그야말로 어떤 공격에도 견딜 수 있는 물질이었다.

하얏트(John Wesley Hyatt)는 1912년에 셀룰로이드 사용을 중지하고 베이클라이트로 당구공을 만들어 쓰기 시작했다. ‘천 가지 용도를 지닌 소재(Material of a Thousand Uses)’라는 선전 문구가 현실화되고 있었다.

타임(Time)지는 1924년 9월 22일 자판 표지에 잘 다듬은 콧수염을 하고 안경을 쓴 발명자, 베이클랜드의 사진 밑에 ‘타지도 않고 녹지도 않는다’, ‘천의 용도를 지닌 신소재’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다이얼을 돌려 사용했던 새카만 전화기는 디지털 시대 전까지 모든 사무실과 가정에서 사용한 전화기였다. 손잡이 달린 코닥 카메라들도 베이클라이트로 만들었다. 포춘(Fortune)지는 1936년에 베이클라이트를 ‘플라스틱의 왕(King of Plastics)’이라고 칭송했을 정도였다. 

75세가 된 베이클랜드는 1939년에 새로운 플라스틱 실용화를 위해 세운 회사 제너럴 베이클라이트(General Bakelite)를 유니온 카바이드사(Union Carbide)에 넘기고 노년을 따뜻한 플로리다에서 보냈다. 베이클랜드의 첫 인공 합성 플라스틱 제품들은 이제 소장가들의 소장품이 되어가고 있다.

한때는 베이클라이트의 위험성을 주장하는 소비자들도 있었으나 이는 당시 아스베스토스(asbestos, 석면)를 보강제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현재도 인도, 중국 등지에서 베이클라이트가 생산되고 있으나 안전성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아스베스토스를 보강제로 사용하지 않는다. 또한 페놀과 포름알데히드의 성분이 결합하면서 독성이 사라지기 때문에 열경화 이후의 독성 물질 배출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다. 

최초의 상업용 페놀계 수지인 베이클라이트가 개발된 이후로 화학자들은 서로 다른 종류의 합성수지 개발에 뛰어들었다. 석유 화학의 발전과 함께 다양한 합성 고분자들이 개발되면서 플라스틱은 오늘날 더욱 널리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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