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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miLOG

차가워 너무나🎵 냉면 속 화학

요즘 같은 한여름에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보다 더 추앙받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윌리스 캐리어’인데요. 에어컨을 발명한 미국의 사업가이죠. 이 분의 업적이 최근들어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고 합니다. 에어컨이 없던 시절에는 땡볕 더위를 어떻게 견뎠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데요. 돌아오는 토요일인 16일은 본격적인 더위의 시작을 알리는 초복이기도 합니다. 초복엔 이열치열로 뜨끈한 삼계탕을 먹기도 하지만, 역시 가장 환영받는 음식은 뭐니뭐니해도 새콤달콤 시원한 냉면이죠! 이가 시리게 차가운 살얼음 둥둥 띄운 냉면과 함께라면 더위도 두렵지 않겠죠?

이런 냉면의 쫄깃한 면발을 만들 때에도 화학의 원리가 숨어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오늘은 냉면 한 그릇에 담긴 알찬 화학을 속 시원하게 파헤쳐보겠습니다! 

 

 

01

시작은 달콤하게 평양에서, 메밀에 끌려🎶

   

 

더운 여름에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음식인 냉면은 면의 원료나, 재료, 조리방식에 따라 종류만 해도 10가지가 넘는데요, 대표적으로 함흥냉면과 평양냉면이 있습니다. 입안에 넣는 순간 미각을 자극하는 새콤달콤한 함흥냉면과 심심하지만 먹다보면 자꾸만 생각나는 평양냉면은 각기 다른 매력이 있지요. 함흥냉면은 감자전분으로, 평양냉면은 메밀로 면을 만들어 면발의 식감부터 차이가 있습니다. 

냉면은 언제 처음 먹게 된 음식일까요? 본래 냉면이라 함은 메밀로 면을 만들어 차갑게 먹는 국수를 의미했습니다. 북한의 연구에 따르면 냉면의 기원은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평양에 살던 주막집 부부가 우연히 100세 노인에게서 장수 비결이 ‘메밀’이라는 말을 들은 후 메밀로 면을 뽑아 동치미국물에 말아먹었는데 맛이 일품이었다고 합니다. 이후 이들 부부가 만든 음식이 맛있기로 소문이 나, 메밀로 만들어 차가운 육수에 말아먹는 냉면이 유명해졌다고 하네요.

과거 기록을 보면, 특히나 조선 시대 왕들의 냉면 사랑을 자주 엿볼 수 있습니다. 순조나 헌종은 물론이고, 철종은 칠월칠석에 냉면을 많이 먹어 일주일간 배탈이 났고, 고종은 사시사철 냉면을 즐겨 먹을 정도로 냉면 마니아였다고 합니다. 조선시대부터 냉면은 국민 입맛 사로잡은 여름철 별미였네요. 

 

 

02

일제시대 연료용 감자전분에서 탄생한 함흥냉면

  

 

이처럼 메밀로 만든 평양식 냉면이 먼저 생기고 이후 감자로 만든 함흥냉면이 생긴 것인데요, 함흥냉면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일제강점기의 아픈 과거가 있습니다. 

1920년대에 일본은 개마고원 지역에 대규모 감자밭을 조성하고 생산된 감자를 함흥에서 가공해 감자전분을 생산했습니다. 일본에서는 공업용, 군사용 목적으로 에탄올이 대량으로 필요했는데 에탄올을 만들 때 전분을 발효해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잠깐! 감자로 에탄올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는 곡식으로 술을 담그는 것과 비슷한 과정을 거치는데요, 크게 전분의 당화과정과 효모의 발효과정이라는 두 가지 단계를 거칩니다. 감자 전분에 물과 당화효소인 곰팡이를 넣으면 미생물이 다당류인 전분을 단당류인 포도당으로 당화*시킵니다. 그리고는 발효 과정에 관여하는 미생물인 효모를 넣어주면 미생물이 단순당을 에탄올로 전환시킨답니다. 

이처럼 연료로 쓰기 위한 감자전분을 한데 모으던 함흥에서는 전분으로 면을 뽑아 먹기 시작했고 거기에 1932년, 무쇠 제면기가 발명되면서부터 냉면의 대중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사람이 직접 국수틀에 면을 뽑는 것은 많은 힘이 필요했는데 기계식 국수틀이 생긴 덕분에 메밀보다 훨씬 쫀쫀한 감자전분 반죽을 대량으로 내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화: 다당류가 효소의 작용으로 가수분해되어 단당류나 이당류를 생성하는 반응

 

 

03

잘 뭉치게 해주는 단백질, 글루텐

   

 

오늘날 우리가 흔히 먹는 냉면은 보통 60~80%의 메밀과 밀가루를 섞어서 만듭니다. ‘글루텐’이라는 성분 때문인데요. 글루텐이란 물에 녹지 않는 불용성 단백질로 이름의 Glu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점착성을 갖습니다. 밀가루에는 글루텐이 있지만 메밀에는 글루텐이 없는데요. 이 때문에 메밀가루만으로는 끈기가 없어 반죽을 뭉치거나 면으로 뽑아내는 게 어렵지요. 그래서 밀가루를 함께 섞어서 만드는 것입니다. 

글루텐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볼까요? 밀가루는 약 70% 가량이 전분이고, 7~15% 가량이 글루테닌(glutenin)과 글리아딘(gliadin)이라는 두 종류의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밀가루에 물을 넣어 반죽을 하게 되면 이 두 단백질이 서로 얽히고 결합하면서 글루텐(gluten)을 만들어내는데, 바로 이 글루텐 덕분에 반죽이 잘 뭉칠 수 있습니다. 

밀가루는 글루텐이 얼마나 들어있느냐에 따라서 강력분, 중력분, 박력분으로 나뉩니다. 주로 쫄깃하고 탄력 있는 빵은 강력분으로, 찰기 없이 포슬포슬한 식감의 과자나 제과류에는 박력분이 쓰이며, 어느 정도의 탄력성도 있으면서 씹는 맛도 중요한 면류에는 중력분이 쓰입니다. 

 

 

04

전분의 알파구조와 베타구조

   

 

냉면은 메밀과 밀가루를 섞은 반죽을 만들고 꾹 눌러서 제면기로 뽑아내는 압출 방식의 압착면입니다. 냉면 특유의 쫄깃함과 탄력의 비결은 면의 압출 과정과 호화 및 노화 과정에 달려 있답니다. 하나씩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주식으로 먹는 곡식은 다당류 포도당인 전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전분은 화학적으로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자연 그대로의  생 전분인 베타(β)전분과 호화 과정을 거친 알파(α)전분이 있습니다. 베타전분은 인체에 소화, 흡수가 잘 되지 않기 때문에 물과 열을 가해 알파전분으로 바꾸어 섭취하는 것입니다. 이를 호화(糊化, gelatinization) 과정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쌀로 밥을 짓거나 밀가루를 반죽하고 가열해 빵을 만드는 것이 모두 호화에 해당합니다. 

반대로 호화된 전분이 60도 이하로 온도가 떨어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물을 배출하며 단단하게 굳어지는 상태를 노화(老化, retrogradation)과정이라고 합니다. 밥이나 빵을 오래 내버려두면 딱딱하게 굳는 현상이 노화에 해당하는데요, 0~4도까지는 온도가 낮을수록 노화의 속도가 빨라집니다. 다만 수분이 응결되는 영하에서는 노화 속도가 급격히 떨어지는데, 이 때문에 노화가 진행되기 전 밥이나 빵을 냉동 보관해두었다가 다시 데우면 원래의 호화 상태를 유지해 갓 지은 밥과 같이 고슬고슬하고 부드럽게 먹을 수 있는 원리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찬밥을 라면 국물에 말았을 때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도 노화과정과 연관이 있습니다. 수분이 빠져나간 베타전분 상태의 찬밥이 이미 수분을 충분히 머금고 있는 알파전분 상태의 따뜻한 밥에 비해 국물을 빨리, 많이 흡수하기 때문에 라면국물이 밥알에 잘 스며드는 것이죠. 전분의 호화와 노화는 우리의 식생활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05

쫄깃함에 담긴 화학의 비밀

   

 

냉면 면을 뽑는 과정을 살펴보면 먼저 제면기에서 나온 면발이 곧바로 뜨거운 물로 들어갑니다. 이때 호화가 진행되는데요, 전분이 뜨거운 열과 수분을 만나 팽창되어 점착력과 부피가 증가하게 되는데, 일정 시간 동안 면을 삶아 호화 과정을 거칩니다. 

어느 정도 삶아 호화된 면은 바로 찬물로 옮기는데 이때 호화가 멈추고 노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뜨거운 물에 풀어졌던 면이 다시 딱딱해지고 호화 전분이 제거되면서 맛이 깔끔해집니다. 비슷한 면류인 국수를 먹을 때도 면을 익힌 후 찬물에서 면을 헹궈주거나 익히는 중간 중간 찬물을 넣어주는 이유도 이처럼 쫄깃한 면발을 만들기 위한 것이랍니다. 이처럼 적절한 호화와 노화는 면의 탄력과 쫄깃함을 부여하는데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한 그릇의 냉면과 관련한 화학 이야기를 알아 보았습니다. 화학 원리를 자연스럽게 터득한 선조들의 생활 속 지혜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요. 원리를 알고 나니 냉면 한 그릇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네요. 그런데 글 읽는 내내 냉면의 유혹, 참기 힘드셨죠? 오늘의 메뉴는 땀방울 식혀줄 시원한 냉면 한 그릇 어떠실까요? 쫄깃한 면발 한 젓가락에 호화 과정, 차디찬 국물 한 모금에 노화 과정을 생각해주세요!


  

종합 케미칼 & 에너지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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